전날 총회에서 승교 부단장 지지발언 한다고 끝까지 있던 바람에 겨우 두 시간 자고 인천공항으로 가게 되었다. 공항에서 가방을 뒤적이는데, 아뿔싸.. 민박집 약도를 두고 왔다. 나리타공항에서 인터넷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많이 불안해하지는 않았지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이번엔 나를 챙겨주는 사람도 없고 내가 꼼꼼히 다 챙기지 않으면 큰일나겠구나, 했다.


정신없이 자고 일어나보니 도쿄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도착하고보니 혼자 하는 여행이 꼭 좋지만은 않았다. 낯선 곳에서 느끼는 막연한 불안감도, 새로운 것들을 보고 느끼는 신기한 기분도 어디 조잘조잘 말 할 곳이 없었다. 인터넷으로 민박집 위치를 찾고 도쿄의 교통카드인 스이카카드와 도쿄시내로 들어가기 위한 넥스 티켓 세트를 사고 나서 넥스를 타러 플랫폼으로 내려왔는데, 저기 벤치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머리스타일의 남자아이가 보인다. 보고 있자니 볼에 반창고가 붙어 있고 이내 나를 알아본다!
진현이었다!! 어제 총회에는 세 시 쯤까지 있다가 가족이랑 3박4일 도쿄여행을 위해 집에 갔다고 한다. 지금 떠올리고 보니 사진이라도 한 장 찍을걸 싶다.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은 서로 알고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어디서든 서로를 조금씩 끌어당기고 있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인 것 같다. 외로움과 조금 무섭기도 해서 두근거려 할 여유도 없던 참에 정말 신기하고 기분좋은 만남이었다:) 게다가 10분 먼저였던 진현이네 가족의 열차가 간 후 다시 내 표를 보고 있다보니 내가 탈 곳은 반대쪽 끝이었다. 내가 처음부터 표를 제대로 봤더라면 같은 플랫폼에 있으면서도 모르고 있었을텐데- 생각할수록 얼마나 신기하던지.

민박집은 신주쿠에서 지하철로 한 역인 신오오쿠보 역 근처에 위치해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미리 들었던 지하철 안내판의 한국말 안내 뿐 아니라, 바람의 화원 포스터에 UN앨범 광고에 길거리에 너무 많은 한국식당에.. 한류의 영향이 정말 이정도인가 믿을 수가 없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신오오쿠보는 도쿄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거의 한인타운이라 할 만한 곳이었단다.
짐을 풀고 곧바로 10분거리인 신주쿠로 걸어나왔다. 아저씨가 직진만 계속 하면 된댔는데, 곧바로 쭉 뻗은길도 아니고 하여 헤매고 있었다. 가이드책의 지도나 사진이랑 주위 풍경이랑 번갈아가면서 보다 보니, 책에서 도쿄 최대의 환락가라고 소개되어 있던 가부키쵸의 입구가 보였다. 그쪽으로는 절대 가지 않으려고 주위에서만 헤매다가 어쩔 수 없이 지나가던 일본인남녀에게 신주쿠 역이 어디인가를 물었는데, 고 스트레이트 .....이러더니 그냥 나를 큰 길까지 데려다 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까 그 가부키쵸 입구를 지나고 나니 큰 길도 나오고 신주쿠 역으로 가는 길이 나왔다..... 그 빨간 간판은 가부키쵸로 들어가는 문이 아니라, 내가 길을 헤매던 곳이 바로 가부키쵸 지역이었던 것이다-_-; 이 사실도 이틀 후 같은 길을 걸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어쩐지 술집이 많더라니...ㅋㅋ
신주쿠 역 근처로 나와 일본어로 적힌 간판들을 보자니 여기가 서울 아니고 동경 맞구나, 싶었다.

심심한데다가 심신은 피로하지 날씨도 우중충하지..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도쿄도청사까지 가려다가 지도상 꽤 멀어보이기도 하여 기분전환 할 겸 하라주쿠로 장소를 옮겼다. (마지막날 신주쿠역에서 나리타공항으로 가는 공항리무진 타고 가다가 도쿄도청사를 슬쩍 지나쳤는데 엄청 높고 포스있는 건물이더라!)

하라주쿠역에 내리니 날씨가 개어있어 기분이 좋았다. 하라주쿠 역의 젊은 이미지와는 반대로 오래된 역의 분위기를 풍기는 하라주쿠 역.

후에 간 곳들에서도 크리스마스 장식은 참 세련되고 예뺐는데, 이 가로수 트리장식은 좀.. 토속적인 냄새를 풍긴다 ㅋㅋ

큰 길가에 크고작은 네모난 건물 1, 2층에 가게들이 들어가 촘촘히 늘어선 모습이 서울과 참 다르지 않았다. 한편 저기 보이는 t's Harajuku나 위에 이상한 트리 주변의 라 포레 같이 백화점은 아닌 브랜드쇼핑몰들이 굉장히 많았다. 비교하자면 대구에 있던 프라이비트 정도? 우리나라엔 밀리오레나 에이피엠 같은 커다란 패션쇼핑 건물에는 주로 보세 옷들이 많고, 프라이비트다 그랬듯이 브랜드쇼핑몰은 백화점보다는 브랜드 종류라든가 다른 재미가 많지 않아서 잘 찾아볼 수 없는데 역시 쇼핑의 메카다.

하라주쿠의 골목골목들. 좁은 길가의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압구정 거리들이나 홍대 거리를 떠올리게 한다.

길건너려다가 우연히 발견한 오모테산도 힐즈.
이렇게 바로 앞에두고 정작 들어가본 건 다음날이었다-_-; 오모테산도 거리에 길게 늘어선 높은 가로수가 오모테산도의 상징적인 모습이기도 했고 인상적이었는데 찍었다가 지웠나.. 사진이 안 보인다.

아.. 육교 건너에 보이는 이 곳 때문에 가로수 사진을 안 찍은 듯도 하고..ㅠ
캐릭터왕국 일본의 메이저한 캐릭터 상품들이 총 집합 되어있는 키디랜드!!

1층 한 쪽에는 이름모르는 요 귀여운 곰돌이가 있고, 들어가자 지하1층부터 2층? 3층까지 키티, 포켓몬스터는 물론 호빵맨 같은 추억의 캐릭터나 스누피, 세서미스트리트 같은 외국캐릭터들도 많았다. 물론 다 가본 건 아니고 1층과 지하1층만 갔다가 나처럼 어른이 혼자 온 건 정말 나 뿐인 것 같아서 그냥 나왔다ㅠㅠ
배가 출출해서 가이드북에 소개된 가까운 식당찾아 들어간 곳은 하라주쿠교자:) 엄청 좁은 골목 한 쪽에 있었는데 두세자리 붙은 곳 나올 때 까지 사람들이 줄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혼자였으므로 일찍 입장! 여기 일하던 직원이 참 남자답고 잘생겼는데 ㅋㅋ 아참, 서구화된 얼굴의 일본 연예인들 보면서 실제로 가보면 일본 남자들 눈도 작고 이빨도 못 생겼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래서 나도 그런 말 들으며 한류에 자부심을 느꼈고! (내세울건 우리나라 사람들의 얼굴밖에 없다며ㅋㅋ) 나는 젊은 사람들 많이 모인 곳을 많이 가서 그런가.. 키도 크고 어깨도 넓고 잘생기기 까지 한 남자들 많던데'-'?? 여자들도 마찬가지.. 그래서 가끔 위기의식을 느끼기도 했다는..ㅋㅋ

이자카야나 작은 식당에는 이런 구조가 많던데, 가운데에 주방이 열려있고 그 주위를 바가 둘러싸고 있다. 물론 한쪽에 테이블 자리들도 있고.


이 교자 6개가 고작 290엔:-)! 말하고보니 싸진 않다만.. 식사 하려고 들어간 곳 치곤 매우 저렴한 가격! 그리고 군만두였는데도 정말 부드럽고 담백했고 속도 쫄깃하니 맛있었다. 자꾸 쳐다보니 사진만 봐도 진짜 맛있어보여 ㅠㅠ

하지만..그래, 290엔은 아무래도 식사값이라기보다는 간식값이지. 만두 6개로 무슨 식사ㅠㅠ?
배가 차지 않아 크레페를 먹기로 했다. 또 하라주쿠에 온 이상 크레페를 안 먹고 갈 수도 없어서:) 듣던대로 크레페가게도 많고 사람들도 많이들 줄서서 기다리더라. 오른쪽에 진열된 엄청나게 많은 메뉴들!

교자를 290엔에 먹고 크레페를 400엔 넘게 주고 먹을 수는 없겠어서 다소 간소한 바나나 초콜렛 휘핑크림 크레페-_-;를 먹었다. 달콤하니 맛있는데 생크림이 너무너무 많더라는 ㅠㅠ
아참! 그리고 우리나라의 호떡집들 처럼 서서 먹을수 있는 곳이 가게에는 없어서 다들 크레페 사서는 골목 입구에 있는 건물 옆 도로 연석에 서거나 쭈그려서 먹고 있었다. 찌질해보였지만 나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는데 그러고 있는 풍경이 재미있어서 찍고싶었지만 시비붙을 것 같아서 참았다ㅎㅎ 전에 파리에서도 생각했지만 크레페 참 맛있고 간단한 길거리 음식이라 우리나라에서도 호떡이나 와플과 함께 길거리 음식으로 자리잡을 때가 조만간 올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생크림이 너무 느끼한 하라주쿠 크레페 보다는 초코만 얇게 뿌려 접은 파리 크레페에 한 표..

그냥 아무 뒷골목이나 들어갔다가 몇 컷 찍었다. 작은 갤러리인듯.


스킨스쿠버 도구 파는 곳인 것 같았다. 조용한 뒷골목이었는데 가게 안에는 사람들이 이야기도 열심히 하고 분위기가 뜨거워보이더라는..

이 곳 거리 이름이 잘 생각이 안 나는데(찾아보기 귀찮아..) 꽃모양으로 가로등이 꾸며져 있고 보세 옷이나 이색적인 옷과 물건을 파는 작은 가게들이 많던 곳. 길도 좁아 엄청 붐볐다. 여기는 속옷파는 가게인데, 안에 들어가보니 속옷과 잠옷, 그리고 스타킹들이 얼마나 화려하던지!
아참, 일본 젊은 여자들은 겨울에도 스타킹을 안 신는다는데 나는 맨다리에 치마입은 풍경보다는 형광색의 알록달록한 스타킹이나 무늬가 특이한 스타킹을 신고 있는 모습들을 많이 봤다.
나중에 민박집 언니들에게 들었는데 일본의 속옷은 훨씬 사이즈가 세분화 되어 있단다. 보았다시피 예쁘고 화려하게 나온 것도 많고. 그리고 C,D컵 이상에도 공기주머니(뽕ㅋㅋ)가 얼마나 충실하게 들어있던지 ㅋㅋ

이때가 거의 네 시 반이었는데도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뒷쪽부터 걸어 올라왔는지 골목끝에서 본 입구 장식. 샤방하다:-)
한국보다 더 일찍 어두워지기도 했고 (지금이 여기 네 시 반인데 아직 낮인데!) 눈 감으면 어질할만큼 너무 피곤하기도 해서 큰 욕심 안 부리고 그냥 일찍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이 날 6인실에 처음에는 나밖에 없었는데 (춥고 무서웠다ㅠㅠ) 알람시계가 없어서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일찍 잠을 청했다. 8시쯤?ㅋㅋ 그러고 있는데 벨이 울리더니 정말 다행히도 일주일간 묵을 손님 한 명이 더 왔다! 그렇게 혼자 도쿄에서 밤을 보내도 되지 않게 해준
다솔언니와의 만남:-)! 벌써 자고있었다는 것에 매우 놀라길래 나는 두시간 밖에 못 잤다고 설명을 하고 조금 더 이야기 하다가 잤다. 언니는 호주에서 10개월 어학연수와 3개월 호주여행을 끝내고 일본에서 2주 경유한 후 서울로 돌아갈 예정이란다. 내가 처음에 온풍기 틀었을 때 입구에 쌓인 먼지때문에 다시 끄고는 코트 입고 자고 있었는데, 그바람에 언니도 여러겹 껴입고 잤다는... 다음 날 재은언니가 미리 온풍기 켜놨는데 너무 따뜻해서 그후로 쭉 온풍기 켜고 살았지만ㅎㅎ
그렇게 불안하게 시작했지만 훨씬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조금 일찍! 첫 날을 마무리 했다.
귀찮아하고 있다가 가은이랑 동생이 여행사진 보고싶다고 하기도 해서 간단간단히 사진에 코멘트만 달면서 쓰려고 했는데 막상 쓰기 시작하니 새록새록 그 때 했던 생각들이 떠올라서 재미있게 쓰고 있다. 여행보다 더 재미있는 여행기쓰기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ㅋㅋ